얻기 위해선 잃어야 할 것도 있는 법

은행나무처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나무가 또 없다.
여름이면 푸른 그늘로,
낙엽 지는 가을이면 연인들의 쉼터로,
해를 지나서는 책갈피 사이에 끼워진 추억으로
늘 우리와 함께 있는 나무가 바로 은행나무다.
그런데 사실 은행나무는 은행나뭇과에서
오직 일 속, 일 종만 있는 외로운 나무다.
더구나 독립수라는 특성 때문에 숲을 이루지 못한다.
저희들끼리 한데 어울려 자라지 못한다는 거다.
워낙 거수로 자라다 보니 주변에는
작은 풀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거대한 몸집으로 땅속의 영양분을 독식하고
넓게 뻗은 가지로 해를 전부 가리니,
그 근처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다른 나무들에겐 곧 죽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은행나무는 경우에 따라 평생
자식 한번 못 본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데,
암꽃이 저 혼자 수정이 될 수 없기에
근처에 있는 수나무가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만
자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 주변의 오래된 은행나무들은 대부분 암나무이다.
만일 근처에 수나무가 없다면 이 은행나무는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수정 한번 못해본 채
살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는 거다.
뿐만인가. 은행나무는 병충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독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혈액순환제로 알고 있는 '징코민'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은행나무가 만들어낸 일종의 독이다.
스스로 살기 위해, 자구책으로 독을 만들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주위의 모든 생명체를 물리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얼마나 독하면 집안의 개미를 없앤다고
일부러 은행나무 잎을 방바닥에 깔아 놓을까.
차라리 제 몸 일부를 포기하고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은행나무는
오랜 시간 살아온 습성을 절대 버리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으면서 오래오래 사는 은행나무.
그러나 그의 행복 뒤에는 이렇게
'외로움'이라는 큰 대가가 따른다.
수천 년 버티는 동안 은행나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여유로운 모습 속에,
화사하게 달린 노란 이파리 속에
그런 인내와 고통이 숨어 있다는 걸 누가 알아줄지.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데,
은행나무를 보면 그 말이 실감난다.
긴 시간 버틴 끝에 굵은 몸집으로 우뚝 선 은행나무.
이제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보면
먼저 이런 말부터 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외로워도 잘 버텨라. 너에게는 그래도
너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잖니."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지음 | 중앙M&B)

Posted by 아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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