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도 명절은 괴로워!

명절 증후군이 꼭 결혼한 여성들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명절이 되어도 고향집에 가기 싫고
가더라도 당일 아침 차례만 지내고 바로 올라오는
미혼 여성들이 늘어간다. "국수 언제 먹여줄 거야?"라면서
짓궂게 놀리는 친척들을 피해 밖으로 나와도
문을 연 식당도 없고, 만나줄 친구도 점점 줄어든다.
명절 증후군은 남성들도 겪는다.
하루 종일 배 두드리며 고스톱이나 치면서
무슨 증후군이 있느냐고? 아니다.
나름대로 남자들도 고충이 있다.
온종일 부엌에서 일을 하는 마나님의 심기 변화를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내가 누워 있는
하늘 위는 맑고 푸르지만 저 바다 건너에서는
A급 태풍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어쩌다 둘만 있게 되었을 때 나름대로 "수고가 많아"라고
한마디 건네면 돌아오는 말은 독기어린 "얼씨구!"다.
그렇다고 손 걷어붙이고 돕자니 어머니 눈치가 보인다.
또 남자는 사회적 성공을 잣대로 그 집안에서 평가를 받는다.
잘 나갈 때야 신경 쓸 일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문제다.
사람이 평생 잘 나갈 수만은 없지 않는가.
그러나 내 사정과 상관없이 명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고향집은 찾아가야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들에게
용돈이라도 덥석 쥐어주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게다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란 게 있다.
작년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받았던 조카놈은 올해는
좀 인상되었기를 바라며 눈을 똘망똘망 뜨고 바라본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친척 어른은, 남의 속사정도 모른 채
"몇 년 다녔는데 아직도 승진을 못했니?"라며
생각나는 대로 비수 같은 말을 꽂는다.
하나하나 대꾸하고 변명하다 보면 구차해질 따름이다.
이처럼 남자들에게도 명절은 스트레스다.
지난 1년간의 사회적 삶을 평가받는
냉혹한 결산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연말의 인사평가 자리에서라면
올해 업무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나름대로 논리적인 반박이라도 할 수 있지만
명절의 고향에서는 그게 통하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자'라는 마음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
명절마다 겪는 열등감이나 좌절감을 반 년 후,
혹은 내년 명절에는 느끼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또는 정반대로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내가 하는 일에 더 큰 애정을 갖고
소중히 여길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명절을 맞아 지난 1년을 평가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기회로 삼으려는 적극적 자세를 취할 때
명절 증후군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속마음
(
하지현(교수) 저 | 마음산책)
Posted by 아카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