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것은 행운이다

호수의 끝쯤에서 문득 길을 잃었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길은 물속으로 사라지고
물 건너 돌담 앞에서 다시 솟아오른다.
물에 빠진 길이라니!
밀물이 들어와 길을 지워버렸다.
물속에 가라앉은 징검다리가 언뜻
보이는 것이 깊지는 않은 듯싶다.
그래도 결단은 필요하다.
돌아갈 것인가, 물속을 가로질러 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나는 다른 길을 찾기로 한다.
길을 잃었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사실 길을 잃은 것은 행운이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나만의 올레길을
만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으므로.
제주 한 곳에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올레길을
갖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비밀의 길, 신비의 길.
세상 어디에도 정해진 길은 없다.
올레길 또한 결코 정해진 하나의 길이 아니다.
올레길의 상징인 화살표와 리본은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일 뿐 길 그 자체는 아니다.
방향을 잃었을 때 화살표는 유용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길을 가두는 괄호는 아니다.
올레길 코스는 등대 같은 것이다.
등대가 내 항해의 목적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길을 놓쳤다고 건너뛰었다고
책망할 까닭은 없다.
여러 명이 함께 길을 걷더라도
그들이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각자의 길을 간다.

올레, 사랑을 만나다
(
강제윤 저 | 예담)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엌 / 이경림  (0) 2010.07.01
하루의 탄생 / 피에르쌍소  (0) 2010.06.30
새벽거인  (0) 2010.06.28
당신은 바람입니다  (0) 2010.06.25
호박벌처럼  (0) 2010.06.23
사람을 만나라  (0) 2010.06.21
나는 정말 부자다  (0) 2010.06.20
아빠하고 나하고…  (0) 2010.06.19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0) 2010.06.18
[박지성] 내가 가고자 하는 길  (0) 2010.06.17
Posted by 아카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