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


리시나요..
당신께서 언제나 즐겨 음미하시던 "도종환"님의 "접시꽃당신"입니다.
위풍당당하고 호기있게 저 詩를 저에게 들려주시고,
아이들에게 들려주시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켜주시던
그리고,
저 詩가 영화로 상영이 될때 함께 극장에서 보았던,
그때의 늠름하신 모습이 아직 눈가에 선해집니다.

소 자신감이 넘치시고, 항상 신중하시면서 진지하셨던..
그러하셨기에 주위에서 많은 인정을 받으시고,
지인들을 리더하셨던 당신...
언제나 밖에서의 힘든 일이 있어도,
약주 한잔에 싱걸벙걸 웃음꽃을 띄우시며 귀가하시며
한손엔 통닭을 들고 들어오시던 당신.
가족들에게 아무런 내색없이 자상하고 인자하셨던
아버지이자 남편이신 당신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신과 함께한 36년의 시간이 저에게는 무척 소중하고,
값진 시간임을 잘 알기에,
비록 지금은 당신이 제 곁에 없지만
늘 당신과 함께 함을 느끼며 감사해 합니다.

11
년전 갑작스래 중풍으로 쓰러지시곤,
갑갑한 병원생활을 잘 견디셨지만,
그후 10년이란 시간동안 행동도 말씀도 많이 불편하셨던지라,
당신 스스로는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지...
그토록 활기차시고, 호기로우셨던 분이셨기에 더더욱
당신의 답답함을 곁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곤 하였지요.

때의 일들을 회상해보니, 그것 역시 당신의 운명이고
저의 운명이고, 우리의 운명이며, 우리의 인연이라 생각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시켜 간직하겠습니다.
오히려....
항상 바쁘셨던 분이셨기에 중풍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늘 그렇듯 아침에 잠깐 뵙고, 저녁에 잠깐 뵈어야 했었지만
10년동안의 병상생활로 인해,
우리 부부는 늘 함께 하는 시간이여야 했었고,
항상 같이 행동을 해야했기에 오히려 다른분들보다 더욱 더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났었던 것 같아요.

신과 제가 젊었을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었지만
경제적으로 많이 힘이 드는 시절이였지요.
무엇하나 소중히 사용하고, 어느것이나 조금씩 더 아껴야 했었으며,
보다 더 열씸히 생활했어야만 했었던 시절..

신 기억나시는지요..
조그마한 가전제품을 하나 구입할 요량이면
몇날 몇일을 고민하고 고민해서, 이리저리 발품팔아가며
가장 저렴한 곳에서 구입을 했었고,
비로소 한개의 물건을 구입하게 되고나면,
그 이후로 신주단지마냥 애지중지 보물처럼 다루었던...
행여 먼지라도 묻을까봐 매일 같이 닦고, 덥개도 만들어서 씌워두던
그때의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금 제곁엔 당신이 오래전 제 생일날 선물해 주셨던 라디오가 있답니다.
지금은 주파수가 맞질않아.. 전원이 맞질않아 사용하지 못하는 라디오이지만,
아직도 저에겐 최고의 선물이고 보물이랍니다.
당신과 함께 라디오 소리에 귀를 귀울이며
흘러나오는 노래도 같이 따라부르고, 성우들의 목소리도 가끔 흉내 내어보던..

렇게 젊은 시절 당신과 함께 조금더 열씸히, 정직하게 살았었기에,
당신이 아파서 병실에 누워계셔도 큰 욕심이 없는 저희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래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아무런 불편이 없었나 봅니다.

맙게도, 주위에서 가족처럼 배려해주던 많은 혜택덕분에,
작은 빚 한번 지지않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하지않고,
늘 검소하게, 만족하며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편하신 몸에도 국가의 경조사에는 항상 가족중에서
제일 먼저 베란다에 태극기를 다셨던 당신...
나라의 정책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나라를 믿지못하면 누구를 믿어야하느냐고
항상 말씀하시며 실천하시던 당신...

신의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저의 건강을 먼저 챙겨주시던 당신...
많이 답답하시고, 편찮으셨을텐데 늘 입가에 미소를 잃지않던 당신의 모습들이
언제나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
무척 그립고 보고프지만,
제 가슴속엔 늘 당신이 존재함을 느끼기에
감사드리고 만족하며 살겠습니다.

답하셨던 지난 10년간의 병상생활은 잊어버리시고,
호탕하고 자신감넘치시던 그 모습 그대로,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당신의 날개를 펼치시는 모습이 절루 상상되면서,
언제고 다시금 만나뵙길 학수고대합니다.
늘 당신이 계신 하늘을 바라볼때면,
자유로우실 당신의 모습을 그리며 절로 빙긋 미소가 지어집니다.


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도종환 -- "접시꽃 당신"

Posted by 아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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