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휴가 그리고 월드컵 등등  

리나라 4대명절은 설날,추석,단오,한식을 들수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최고의 명절으로는 단연 "설날"과 "추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중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니는데요,
이때 우린 설빔을 입고, 차례를 지내며,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들으며 친지들과 가족들 모두 조상의 묘를 찾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됩니다. 물론 떡국을 먹는 풍습 또한 빼놓을 수 없죠.
또한, 중추절()·가배()·가위·한가위라고도 부르는 추석에도 역시
모든 친척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송편을 먹으며,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다녀오고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등
오랫만의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리고 여름이 되면 가장 기다려 지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휴가,바캉스,방학입니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연인끼리 올 여름 바캉스는 어디로 떠날 것인지, 휴가는 어떻게 보낼것인지,
두서너달부터 미리미리 계획들을 잡으시고, 산으로 바다로 혹은 해외로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하죠.
여름 휴가, 바캉스의 즐거운 추억. 재미난 에피소드 한두개씩쯤은 누구나 다들 가지고 계실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산이나 계곡보단 바다를 좋아하는 데요, 여름의 바다에서 즐거웠던 지난 날들이 포스팅을 하면서도
마구 떠올라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게 되네요. :)

한, 온국민이 좋아하는 월드컵시즌이 되면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날이면 붉은악마의 빨간티를 입고 거리응원들을 많이하십니다.
비단 빨간 티셔츠 뿐만아니라, 머리엔 붉은 악마 뿔장식도 달고, 페이스페인팅도 하며, 태극기를 두르며
대~한민국 이란 구호를 다 함께 부르며 열띤 응원을 하게 되지요.
여의치않아 거리응원을 못할 시에는 친구와 동료와 그리고 가족끼리 모두 삼삼오오 모여서 응원을 하곤하는데요,
이때만큼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마음이 되는 시기도 드물것입니다.
물론, 월드컵뿐아니라 올림픽도 마찬가지겠지요.


   119 구급대원  

러한 명절이나 휴가 그리고 월드컵응원등등 우리가 편안히 그리고 즐겁게 이런 시간들을 만끽하고 누리고 있을때
언제나 우리 곁엔 우리의 안전을 위해 똑같은 명절. 똑같은 휴가. 똑같은 월드컵응원을 즐기지못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가장 대표적인 119구급대원들이 바로 그분들 이십니다.
언제 어느때고 비상상황이 있을 지 모르기에 항시 대기를 하여야하고,
우리가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그분들은 생과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험난한 일들을 하고 계시죠.
심지어 모두가 곤히 잠들어있는 새벽시간에도 비상상황에 곧잘 땀을 흘리며 안전을 위해 밤을 새곤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라든지, 성수대교 붕괴사건에도 제일 먼저 투입이되어
위험한 현장에서 한명의 생명을 구하기위해 애를 쓰던 119구급대원들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태국이나 중국등으로 해외여행을 떠날때도 119 구급대원들은 지진속 생명을 구하기 위해 떠나기도 합니다.

119구급대는 언제 생겼을까요.
우리 나라의 119란 번호의 유래는 안타깝게도 일제치하시절 일본으로부터 소방 문물이 도입되는 것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1917년 화재탐지 전용전화가 동경과 오사카에서 제도화되었지만
아직 자동화가 되어 있지 않아 화재가 발생하면 전화 교환수에게 "화재"라고 알리어 소방서와 접속되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관동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은 자동식 교환체제를 추진하게 되었고
1926년 동경, 교토 전화국에서 처음으로 이를 채용, 다이얼 시간이 짧아지도록
1927년부터 지역번호(국번의 제1숫자)로서 사용되고 있지 않은 "9"를 채택함으로써 119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우리 나라는 해방 후에도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119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전기통신 100년사"에 보면 경성중앙전화국의 교환방식이 1935년 10월 1일 자동식으로 바뀌면서
서비스 번호를 개정하였는데 총 10개의 서비스 번호(교환 114 등) 중 화재통지용으로 119번이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소방을 주 임무로 하는 119가 구급업무를 시작한 것은 1981년입니다.
그 이전에는 화재현장에서 발생한,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소방차에 태워 병원에 이송했죠.
그런데 야간에 발생한 응급환자의 경우, 야간 통행금지 때문에 병원 이송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
부산소방본부와 대전소방서 등 6개 소방기관이 야간(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의 응급환자를 소방차에 태워
무료로 병원에 이송한 것이 119구급의 시초였습니다.

주민의 호응이 높자, 서울소방본부는 1982년 1월 서울시장 방침 제22호를 제정,
구급차 9대, 구급대원 54명으로 구성된 119구급대를 발족하여 소방 구급업무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초창기 구급대원의 복장은 작업복, 백색 완장, 백색 머플러로 정했고
이송 대상자는 사망자와 행려병자를 제외한 응급환자 중 보호자가 있는 경우로 한정했습니다.
1983년 정부가 소방법을 개정, 소방의 기본 업무에 '구급'을 포함시킴으로써 119 구급대는 법적 근거를 갖췄습니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84년부터 전국의 모든 소방관서에 119 구급대가 설치되기 시작했죠.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 119 구급대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방업무외의 구급업무를 놓고 볼때 말이죠.
불과 3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있는 119구급대이지만, 오늘날 우리모두는 너무도 잘 알고있습니다.
응급상황이 발생할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번호가 119란 사실을요....

   119구급대원과 기사도 정신  

21세기 기사도 정신으로는
"동료애, 봉사, 배려, 메너, 열정, 멋, 신뢰, 자부심, 자신감"등등 여러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119구급대원들의 업무외에 삶과 생활방식에서 너무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게 됩니다.
119 구급대원들은 언제나 눈에 띄는 주황색의 제복을 입습니다.
물론 화재진압의 임무를 띤 경우 검은색의 방화복을 입습니다만,
언제 어디서 보아도 눈에 확 띄는 주황색 제복은 119구급대원임을 누구도 잘 알고있죠.
이들의 눈에띄는 주황색 제복은 우리들에게 안전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는 119구급대만의 자부심. 자긍심뿐 아니라, 제복 색깔만으로도 이미 메너와 신뢰감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이는 119구급대원의 활약은 참으로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119 구급대원의 시민"봉사" 또한 관과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위급상황에서 경중이 있을 수 없겠지만, 어떠한 위급상황에도 119구급대원들은 현장으로 바로 달려간다라는
사실을 볼때 그들의 "배려"와 "봉사심"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등산을 할때나, 물놀이를 할때나, 산책을 하다가도 혹은 잠을 자다가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되면
우리는 즉각 119에 신고하게되고 몇분후 맞이하는 그들을 볼때면 그토록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큰 피해가 없는 .. 그렇기에 훈련이 덜 될수도있는 자연재해인 "지진"의 경우에도
과감히 해외원정까지 가서 생명을 구하는 일이란 그들만의 "열정"과 "자긍심"이 없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는 119구급대원의 동료애를 넘어 인류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고귀한 정신이라 할수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며 생활속 즐거움들을 만끽할때, 119 구급대원들은 묵묵히 우리의 안전을 생각합니다.
21세기 기사도 정신.
이시대 진정한 기사도 정신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봉사와 배려, 신뢰감. 그리고 자긍심으로 뭉쳐진

열정적이면서 절도있고 정중함이 돋보이는 119 구급대원들의 모습에서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P/S
21세기 기사도 정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싶으시다면,
아래의 시바스리갈 블로그 주소로 가보심도 좋을 것입니다.
시바스리갈 블로그 주소 :
http://blog.naver.com/limestone2/
Posted by 아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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